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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학의 오늘] 1930년대 유머에 담긴 결혼의 표정 1화

사랑하는 아들아! 네 편지는 받았다. 네게 혼인하라는 편지를 너의 어머니가 자꾸 쓰라고 한다. 지금도 옆에 지켜 앉았다. 너도 혼인하고 싶다하니 아무쪼록 속히 하도록 하여라.
이 애, 지금 너의 어머니가 어디 볼일 보러 갔다. 이 자식! 혼인하지 말아라. 독신생활이 제일이니라. 아비는 혼인 생활에 진저리난다.

 

<걸작소화집>(신문당, 1939)은 식민지 시기에 발간된 재담집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의 한 절을 두고, 거기에 나타난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을 수 있는) 결혼에 대한 남성의 ‘분열증’ 앞에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페이지를 넘긴다.


: 나는 결혼을 두 번 했는데, 두 번 다 실패했네. 
: 어떻게 되었기에?
: 첫번 결혼은 색시가 도망을 갔네 그려 
: 둘째번은?
: 둘째번은 영 가지를 않네 그려.


‘우스개소리’, ‘재치로운 이야기’라는 뜻을 가지며, 때로는 소화(笑話), 골계담(滑稽譚)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재담은, 그동안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파적거리 등의 취급을 받으면서 문학사의 시야에서는 거의 잊혀졌다. 독서물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에서조차 재담의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현전하는 것 중 가장 이르게 공간(公刊)된 재담집 <요지경>(슈문서관, 1910)으로부터 기산할 경우, 스무 권이 넘는 재담집이 식민지 시기에 발간되었고 그 중 적지 않은 책들이 재판 이상을 거쳤다. <깔깔우슴>(조선도서, 1916)이 1926년 당시에 이미 8판을 거듭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재담집은 20세기 전반 내내 ‘팔린’ 스테디셀러였으며 식민지 대중문화와 독서문화의, 작지만 당당한 하나의 구성물이었다.

 

물론 재담의 전통은 위로 조선시대 이야기꾼의 청중을 압도한 우스운 이야기판이나 한문으로 기록된 ‘패설’로부터 연원할 것이며, 아래로는 해방 이후, 그리고 90년대의 ‘베스트셀러’ <YS는 못말려>(미래미디어, 1993) 시리즈에까지 이어진다. 공식적인 ‘책’의 역사에서는 소외되었으나 재담은 계속 소비되었고, 재담이 품고 있는 웃음의 대상은 계몽, 학교, 성, 음식, 유행, 외모, 신분, 정치, 욕망 등 삶의 전반을 망라한다. 이 짧은 글에서는 그 중 ‘결혼’이라는 문제에 집중해서 식민지 시기 재담의 한 모습을 살펴볼 것이다.


물론 식민지 시대의 결혼에 대해서라면, 무수한 신문기사나 소설이 증언한 희비극의 기록이 적잖이 남아 있다. 또한 결혼을 놓고 동서고금의 철현(哲賢)들이 전한 아포리즘 또한 남아 있다. 그렇다면 결혼에 대한 수많은 발화 가운데, 재담의 자리는 어디일까. 신문이나 잡지, 법안이나 판결에서처럼 공식적이지도 근엄하지도 경직되지도 않으며, 또한 소설처럼 기술적이고 극적인 첨삭이 가해지지도 않은, 가장 투박하고 거칠고 동시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웃음’. 공적인 담론의 장과 때로는 겹치지만 다른 한 편으로 그 담론 틈에 비껴있는 작은 공간에서 삶에 밀착한 웃음으로 결혼을 그려내는 것은 재담의 몫이었다. 그것은 지혜일 수도 있고 위안일 수도 있고, 단지 파열된 비웃음일 수도 있고, 퍼질러진 신세한탄일 수도 있었다. 재담이 보여주는 결혼에 대한 웃음은 그 여러 표정 사이에 존재하기도, 혹은 그 여럿 모두이기도 했다.


 
<요지경>(슈문서관, 1910)의 본문 오른쪽에 ‘총독부도서관’ 장서임을 나타내는 날인이 있다

 

알다시피 환웅웅녀 이래로 결혼은 이 땅에서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처첩제도가 있었다고 하나, 모든 양반이 그러한 것은 또 아니었다. 그 시대에도 능호관 이인상처럼 단 한 사람 아내에 대한 애틋함을 절제된 제문의 형식에 담아낸 맑은 마음으로부터, 난봉꾼 파락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의 결혼‘들’이 있었다. 다만 조선시대의 ‘웃긴 얘기’를 일별할 때, 우리는 이 시기 재담이 품고 있는 주제가 주로, 투기나 질투, 결혼이라는 제도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주로 남성의) 욕망, 혹은 권력을 이용해 음욕을 충족시키려는 시도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웃의 아내를 범하려다 망신을 당하는 남성, 처의 투기를 고치려다 오히려 고생만 하게 된 남편 등이 웃음의 주된 대상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물론 남성의 ‘바람’과 아내의 질투는 여전했다. 그러나 재담이 근대에 들어서 새롭게 포착한 것은 부부 ‘두 사람 사이’의 때로는 미묘하고, 울컥하며, 한숨만 나오는 관계 그 자체였다. 투기와 바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재담은 그보다는 부부가 각기 서로를 향한 ‘애’와 ‘증’의 감정덩어리 그 자체와 자신의 타들어가는 속내에 보다 집중했다. 부부라는 것 자체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 것이다. 재담이 그려내는 부부 ‘사이’의 일이 앞서 본 것 같은 분열증적인 울컥함으로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부로서 삶의 희노애락과 두 사람의 지친 인생, 그리고 기쁨과 회한이 모두 웃음의 아래에 놓여 있다. 여러 재담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아무리 오래 같이 살고 오래 얼굴을 봐도, 끝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때 문제는 이해할 수 없는 바로 그 존재와 함께 평생을 산다는 것이었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또 내 눈 앞에 있을 바로 그 얼굴. <죠션팔도 익살과 재담>(덕흥서림, 1927)에 하나의 짝으로 나타나는 편지 형식의 두 재담은 서로에 대한 ‘이해불가’의 심정을 극대화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정념들을 길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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